
면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손대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건 아마 자장면일 것이다. 어릴 적엔 별다른 문제없이 맛있게 먹었을 것 같지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자장면을 먹을 때면 항상 소화가 안 되어 속이 더부룩하고 결국 체하고 만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작은 임신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생명을 품은 몸은 평소와 다르게 민감해졌고, 자장면처럼 진하고 기름진 음식은 한 숟갈만 먹어도 속이 뒤집히는 일이 잦았다. 아니면 그날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잔뜩 긴장한 채 누군가와의 대화를 이어가던 자리였는지, 억지로 웃으며 한 입 한 입을 넘겼던 순간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장면은 어느새 내게 두려운 음식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가끔은 자장면이 생각난다. 탕수육이나 짬뽕을 주문한 자리에서 누군가 자장면을 비비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갈증이 인다. 검은 소스가 면발과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특유의 윤기, 그리고 그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어릴 적의 즐거웠던 순간들을 소환하는 듯하다. 하지만 한 입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 한 젓가락이 내 속을 또 한 번 괴롭힐 것을 알기에, 나는 자장면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그런데 자장면을 못 먹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마치 삶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처럼, 자장면도 내게는 그렇게 흘러간 존재다. 우리는 한때 가까웠지만, 지금은 멀리서 존재만으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자장면을 먹지 않아도 나는 다른 면 요리들을 충분히 즐긴다. 국수, 파스타, 라면, 심지어 쫄면까지.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고 만족한다.
자장면은 이제 내게 추억의 음식이다. 다시 도전할 날이 올까? 혹은 영영 손대지 못할까?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장면은 나를 과거로 데려가게 만드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그 향과 모습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 어색했던 대화, 그리고 몸이 변해가던 시간의 흔적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자장면 대신 다른 음식을 선택하며 하루를 보낸다. 자장면과의 관계가 끝난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자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이 작은 갈증이, 우리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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