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ora ray 2024. 12. 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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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12월의 거리에서 그녀는 홀로 서 있었다. 입고 있는 외투의 단추를 꼭꼭 채웠지만,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마음이 그랬다.

7년 전 겨울, 그는 떠났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약속도 없이. 그녀의 삶에서 그의 흔적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무책임하게. 단호하게. 그러나 잔인할 만큼 또렷하게.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는 되뇌어도 아픔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감정은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

그날, 7년 만에 그가 연락을 해왔다.
“보고 싶다.”
화면에 떠오른 짧은 메시지는 단순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제 와서?'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화면은 꺼져 있었지만, 그의 메시지가 아직도 거기 있는 것 같았다. 손이 떨렸다.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이 자신을 괴롭혔다.

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집을 나섰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가야 할 곳이 있었다.

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한적한 카페의 창가 자리. 그는 변하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7년의 시간이 그를 스쳐 지나간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속삭이듯 자신에게 말했다.
"여기서 끝내야 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그녀를 보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앉지 않았다. 오히려 테이블에 양손을 짚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7년 전 겨울, 당신 말도 없이 떠났었잖아."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말을 이었다.
"간다는 말도 없이. 당신을 사랑했던 여자는… 그날 죽었어."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잊어. 뻔뻔하다, 당신. 내가 여전히 당신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니?"
그의 입술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 결혼할 사람이 있어. 그러니 다시는 연락하지 마."

그녀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대답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폐를 얼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무언가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번 눈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처음으로 겨울의 하얀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제 그녀에게 겨울은 상처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야 진짜로 끝났어."

그리고 그녀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며 다짐했다.
"내 삶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